평균 49세로 조기사망율 '톱'
뇌 수술 통해 발생 부위 절제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16년간 진료해온 고 이윤희 씨(31)가 기억에 남습니다. 발작은 1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정도였고, 마지막 진료시 7개월 전에 전신강직간대 발작이 딱 한번 발생하였었지만 항경련제를 증량했습니다.
윤희 씨는 뇌전증 환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사, 프로들이 함께 하는 희망음악회에서 함께 연주도 많이 했었죠. 당시 임신 3개월차여서 축하도 해줬습니다. 그런데 3주 후에 갑작스럽게 환자의 남편에게서 울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거실에서 사망해 있더라는 비보였습니다. 당시 크게 충격 받았습니다. 이 후 뇌전증 돌연사를 막는데 더 적극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됐습니다.
뇌전증을 가진 고등학생의 어머니는 공부하던 아이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방에 들어가보니 마치 아이가 기도하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더랍니다. 갑작스러운 사망이었습니다.”
뇌전증(腦電症·epilepsy) 치료 권위자 홍승봉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뇌전증지원센터장·사진)의 설명이다. 오랜 시간 임상 현장에서 환자와 함께해온 홍 교수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을 가진 젊은 환자들의 안타까운 돌연사 사례를 현장에서 여러 차례 접했다.
뇌전증은 반복적인 경련 발작이 발생하는 만성 뇌질환으로 여러 가지 원인들에 의해 뇌신경세포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서 발생한다. 1000명 당 7명이 앓고 있으며 매년 10만 명당 20~70명이 새로 발생한다. 뇌전증은 10세 이하, 60세 이상에서 호발한다.
대중에게는 흔히 ‘발작을 일으키는 병’ 정도로 인지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질환은 경증부터 난치성으로 나뉘는 만큼 뇌전증 역시 증상과 예후가 다양하다. 홍승봉 교수는 특히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돌연사’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영어로는 SUDEP(sudden unexpected death in epilepsy, 뇌전증 돌연사)이라고 한다. 홍 교수는 “어떤 질환에도 ‘돌연사’가 같이 붙는 경우는 없다. 뇌전증만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뇌전증 환자수는 약 36만명. 이 가운데 70%는 약물 치료로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고, 완치되기도 해 큰 문제가 없다. 사망률, 심리적 문제 발생 면에서도 건강한 일반인과 비슷하다.
반면 30%에 속하는 12만명은 2가지 이상의 항경련제를 복용해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이다. 언제 어디서 경련발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신체 손상과 돌연사의 위험이 15배 이상 높다는 게 홍승봉 교수의 설명이다.
▲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도입된 수술 로봇.
홍 교수는 “등산 중에, 안전장치가 없는 옥상에 있거나, 계단을 내려가다가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나. 이들은 화상, 익사, 골절, 낙상 등 신체 손상을 입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여성 환자의 사례를 공유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여성은 한 손에 벙어리 장갑을 착용하고 왔는데, 장갑을 벗어 손을 보여줬다. 손가락 3개가 없었다.
홍 교수는 “환자는 요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발작이 일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구석에 쪼그리고 있고, 손가락을 끓는 물에 넣고 있어 손가락이 없어졌다고 호소했다”고 말했다.
뇌전증으로 사망 시 평균 나이는 49세. 조기사망율이 가장 높다. 실제 뇌전증은 10대, 20대, 30대, 40대에서 신경계 질환 사망률 1위 질환이다. 대체로 다양한 연령대에서 발생하는 암 환자의 평균 사망연령은 66.8세다. 이에 비해서도 20년 가까이 젊은 편이다.
홍 교수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돌연사율은 일반인의 30배라고 강조했다. 20~45세 젊은층도 마찬가지다. 그는 “뇌전증 돌연사는 (뇌전증을 제외한) 기저질환 하나 없고, 건강한 상황인데 전혀 예기치 않게 이유도 모르고 죽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양쪽 뇌에 과도한 전류가 흐르고 신경세포가 과흥분 되면 의식이 없어지면서 팔다리가 꼬이고 눈도 돌아가는 전신경련발작(대발작)이 온다. 발작 후 나쁜 자세로 인한 기도 폐쇄 등이 문제가 된다. 옆에 누군가 있을 때라면 대개 산다. 실제 뇌전증 돌연사의 80~90%는 혼자 있을 때 발생한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약물을 써도 잘 듣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홍승봉 교수는 답은 ‘뇌전증 수술’이라고 말한다. 뇌전증이 발생하는 뇌부위를 찾아 절제하는 게 목표다.
홍 교수는 “뇌전증 수술은 돌연사율을 3분의 1로 줄이고, 10년 이상 장기간 생존율을 50%에서 90%로 높인다. 즉,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수술의 1차 목표는 치료다. 뇌전증 수술에 예후에 대해 세계적으로 평균을 낸 결과 수술 후 65%는 발작이 완전 소멸했고, 20%는 발작이 크게 줄었다.
홍 교수는 “1년 동안 대발작이 한 번 발생하면 돌연사 확률이 5배 높아지고, 3회 발생하면 15배 높아진다. 이런 확률까지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약물, 수술을 포함한 더 적극적인 치료”라고 말했다.
문제는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의 수가 전국에 7개밖에 없어서 대부분 뇌전증 수술을 권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홍 교수가 수없이 정부에 뇌전증 환자를 위한 국가의 거점 뇌전증 전문병원 지정 및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이유다.
홍 교수는 “뇌전증 수술에 대해서 알려야 하는 이유는 살릴 수 있고, 신체 손을 피할 수 있는 환자를 놓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뇌전증 돌연사로 하루에 1명 이상의 젊은 뇌전증 환자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 뇌전증도움전화(1670-5775)는 뇌전증돌연사 예방법, 응급 조치, 약물/수술 치료, 사회복지, 심리 문제 등 모든 뇌전증 관련 문제에 대한 전문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