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도우미견 훈련생 릴리가 지난 26일 경기도 평택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훈련사가 쓰러지는 시늉을 하자 훈련사의 턱을 자신의 몸으로 받쳐 기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평택=최현규 기자
지난 26일 경기도 평택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에서 훈련 중인 6살 골든 두들 ‘바람이’는 김수민(26) 훈련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김 훈련사가 갑자기 경련이 온 듯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바람이는 큰 소리로 짖으며 바닥에 놓인 버저를 발로 눌렀다. 이내 사이렌이 울렸다. 이번엔 김 훈련사가 엎어지듯 바닥에 쓰러지자 바람이가 곧장 달려와 머리부터 몸 전체를 김 훈련사 겨드랑이 사이로 집어넣더니 그의 머리를 받치고 턱을 들게 했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바람이와 6살 골든 두들 ‘릴리’, 4살 스탠더드 푸들 ‘샐리’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육성되는 ‘뇌전증 도우미견’ 훈련생이다. 뇌전증지원센터는 이날 대한뇌전증학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시각장애도우미견 외에 뇌전증 도우미견 육성 사업이 시행되는 건 처음이다. 센터는 올해 안에 2명의 뇌전증 환자를 대상자로 선정하고 도우미견을 파견할 계획이다. 훈련생 중 2마리가 먼저 ‘1기 뇌전증 도우미견’이 되는 것이다.
뇌전증 환자들은 갑자기 나타나는 발작 증상으로 크게 다치거나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한다. 도우미견은 뇌전증 환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 짖거나 버튼 등을 눌러 주변과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또 바람이처럼 환자가 쓰러지면 몸으로 환자를 받치거나 옆으로 눕게 해 기도를 확보할 수 있게 돕는다. 필수 응급처치를 도우미견이 하는 것이다.
홍승봉 뇌전증지원센터장은 “약을 먹어도 발작을 계속하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돌연사 위험률은 일반인의 50배가 넘는다”며 “뇌전증 도우미견이 있으면 안타까운 상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훈련생 바람이가 바닥에 놓인 버저를 누르는 모습. 평택=최현규 기자
훈련 과정은 10개월 정도다. 바람이 등 도우미견은 4개월차 훈련에 접어든 상태다. 이 개들은 기존에 지체장애인 도우미견으로 훈련을 받기도 해 기본적인 복종 훈련에는 잘 따랐지만, 뇌전증 증상에 특화된 훈련을 추가로 받는 중이다. 바람이와 릴리는 버저는 잘 눌렀지만, 쓰러진 훈련사의 소매를 세게 잡아끌지는 못했다. 샐리는 쓰러진 훈련사의 몸을 받치는 훈련은 곧잘 했지만, 아직 짖는 데는 미숙하다.
훈련사들은 뇌전증 환자들의 증상이 담긴 영상을 직접 찾아보며 훈련에 적용하고 있다. 이정혁(26) 훈련사는 쓰러지는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하려고 넘어지는 시늉을 하다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이형구 장애인도우미견협회장은 “도우미견을 통해 뇌전증 환자들이 두려움을 덜고 외출하며 사회적 접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과정에서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뇌전증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더 많은 환자에게 도우미견을 지원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평택=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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